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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HS/논커플링

[강우빈] 7대 죄악 ─ 분노

by cllun 2018. 11. 18.

◈ 원작과 다른 전개
◈ 1인칭 관찰자 시점. 주인공은 모브입니다.
◈ 교량님과의 페어 합작, 공캎 게시글 → https://cafe.naver.com/onimobile/3098714



 교는 좀비에게 점령당했다. 죽음에는 순서가 없었다. 교사가 살거나, 학생이 살거나, 그도 아니면 둘 다 죽었다. 대개는 둘 다 죽었다. 인간은 미지의 존재 앞에서 약했다. 아니, 적어도 우리는 약했다. 나는 낙오되어 죽을 날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사방이 좀비였고, 내 몸뚱아리는 반에 갇힌 채였고, 식량도 동이 났고, 혼자였다. 그래서 이렇게 버티다 죽을 거라고 생각했다.
 희망을 버리고 꼼짝없이 사신을 기다리던 나를 구한 건 강우빈이었다. 첫 대면부터 너는 왜 아직 안 나갔냐고 그에게 물었다. 내 물음에 그는 주위를 살피며 나직히 말했다.

 “나갔다가 다시 온 거다. 너 같이 낙오된 학생, 교사가 좀 된다고 들었거든.”

 솔직하게 말해서, 나는 이전까지만 해도 강우빈이나 선도부에 관한 모든 것은 죄다 고리타분하다며 등한시했었다. 그러나 자신을 구하러 온 강우빈의 행동, 인명 구조를 위해 다시 돌아온 것이라는 그의 말에 감동을 받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냥 감동 받았다는 말로도 부족했다. 죽음을 감수하고 불길로 몇 번이고 뛰어드는 소방관처럼, 나가면서 본 그의 등은 넓었다. 비록 키는 나보다 작았지만 말이다.

 우리는 탈출로를 확보하면서 많은 대화를 나누진 않았다. 괜히 신경써서 말을 걸 정도로 친한 사이가 아니었고, 그는 어떨지 모르나 적어도 나는 이런 상황에서 분별없이 친구 사귀기에 열을 올리는 성격이 아니었다. 게다가 대화 소리가 우리에게 어떤 불리한 요소로 작용할지 알 수 없어 위험하다는 아주 괜찮은 핑계도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대화를 하지 않아도 될 변명을 모조리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강우빈에게 말을 걸고 말았다. 호기심은 불가항력이다. 강우빈과 나의 첫 대화를 곱씹다가 묘한 구석을 발견한 탓이었다. 그는 탈출하던 도중 나를 발견한 게 아니었다. 이곳은 무덤에 가깝다. 곳곳에 시체가 말 그대로 활보하고 산 것은 죽어나는 곳이다. 이런 곳에 그는 ‘제 발로 다시’ 들어온 것이다. 이런 곳에 두세 번 들어오려면, 그것도 구조를 목적으로 왔다면 상당한 각오를 다지고 왔을 터였다. 나는 그의 용기가 어디서 샘솟았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그에게 다시 들어온다는 생각에 무섭지는 않았냐고 물었다. 그는 대꾸없이 앞장서다가 길이 막혔을 때 비로소 나를 바라봤다.

 “꼭 여기서 해소해야만 하는 의문인가?”

 나는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가 곧장 말했다.

 “전혀. …아니, 조금. 그러나 공포와 구조는 별개다. 내게는 학생을 제대로 통솔하지 못해 낙오자를 발생시켰다는 책임이 있다. 그러니 당연히 그들을 구하러 돌아와야지.”

 나는 강우빈에게 그가 어쩌면 죽었거나, 앞으로 죽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도 그러는 거냐고 묻고 싶었지만 너무 뻔한 질문일 것 같아 그만뒀다. 대신 두 번째로 좀비와 대면한 기분이 어떻냐고 물었다. 그가 눈살을 찌푸렸다. 무례했나 보다.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했다.

 “두 번째 아니야.”

 다소 딱딱하면서도 명료한 대답이었다. 의문을 다시 표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여섯 번째다. 네가 일곱 번째 구조자고. 첫 번째 구조자는 물론 나였다. 그래서 일곱.”

 왜 일곱인지 물어보려다가 답을 듣고 입을 다물었다. 아무리 책임감을 느껴도 6번이나 죽음의 소굴에 다시 들어올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다. 강우빈은 자신을 버렸거나 미친 게 아닐까 싶었다. 물어볼 점이 갈수록 늘었지만 결국 6번째로 본 좀비는 어땠냐고만 물었다. 나는 그게 정말 궁금했다. 그는 한숨을 쉬더니 “네놈이 여섯 번 마주쳐 봐라.” 라고 말했다. 별로 경험하고픈 일은 아니었다. 그래서 닥치고 걷는 데 집중했다.



 여곡절 끝에 무사히 밖에 나온 나와 강우빈은 어른들의 환영을 받았다. 가장 먼저 보고 싶은 것은 부모님이었다. 하지만 안전 상의 문제로 부모님들은 학교 근처에 올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좀비 바이러스 검사라는 명목 때문에 내가 집에 갈 수도 없다는 것도 들었다. 이해가 될 리 만무했지만 교문은 통제되고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었기 때문에 살아 있다는 것에만 일단 감사하며 의자에 앉았다. 나와 강우빈은 현재 임시로 세운 응급 처치용 천막 안에 있었다.
 보건 선생님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사람은 간호사였다. 보건 선생님이 행방불명된 이후 새로 보건 선생님이 된 모양이었다. 그녀는 나를 검사하고 그 다음으로 강우빈을 검사했다. 먼저 나는 정신적인 충격을 받았을 뿐, 신체적인 이상은 없다고 했다. 하지만 강우빈은 무리한 어깨 사용으로 고통을 호소했다. 그녀는 그의 팔에 부목을 대 줬다. 나 때문에 강우빈이 다쳤다는 생각이 들어 사과했다. 그는 거두절미하게 사과를 받아들였다.

 “네가 죽어 있었다면 화가 났을 테지만 살아서 나왔으니 됐어.”

 강경한 표정이 인상적이었지만 어조가 이상했다. 저 말의 속내는 내가 살아서 다행이란 것일까, 나를 살려서 다행이란 것일까. 후자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어찌 됐든 그가 나를 구했다는 건 맞는 말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론다 선생님이 천막으로 들어와 강우빈을 찾았다. 그녀는 강우빈의 상태를 물었다.

 “어깨 근육이 늘어난 건지 탈골인 건지 모르겠다고 들었습니다. 일단 부목을 대 놓았습니다.”

 성실한 그의 답변을 들은 론다 선생님의 표정이 낭패로 물들었다. 나는 그것을 아끼는 학생이 다쳐 걱정스러운 마음이 표현된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런데 이후 그녀가 강우빈에게 물어본 질문은 순수한 걱정과는 조금 거리가 먼 것 같았다. 그녀는 그에게 한 번 더 다녀올 수는 없겠냐고 물었다. 그의 인상이 눈에 띠게 일그러졌다. 나는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강우빈은 제 어깨에 두른 부목을 응시하다가 반문했다.

 “제 팔은 지금 사용할 수 없습니다. 지금 가면 틀림없이 죽을 거예요. 119 구조 대원은 언제 오죠?”

 그들은 오지 않는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학교의 상황을 외부인이 이해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괜히 바이러스까지 옮아 외부로 내보내면 큰일이 발생할 거라는 이유였다.

 “그럼 다른 부원을 보내 주세요. 전 갈 수 없습니다. 이제 쉬고 싶어요.”

 강우빈이 굳은 음성으로 의사를 확고히 밝혔다. 론다 선생님은 다른 부원들도 그만큼 지쳐 있다고 말했다. 강우빈이 그럼 그녀가 가는 게 어떻겠냐고 묻자, 그녀 자신은 다른 학생들의 상태도 관리해야 하기 때문에 자리를 비울 수가 없다고 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변명에 불과했다. 이중 어느 누구보다 지쳐 보이는 건 단연코 강우빈이었다. 강우빈 스스로도 거기까지 생각이 미쳤는지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구급 상자를 들고 지나가던 학생 한 명을 불렀다. 호명된 학생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가와 약이 필요하냐고 질문했다. 강우빈은 고개를 젓고는 학생에게 아픈 곳이 있는지 물었다. 학생은 부정했다.

 “아직 교내에 사람이 더 있는 모양인데, 나는 보다시피 팔이 이 모양이라서 말이다. 여기 론다 선생님께서 지시하셨으니 대신 다녀오거나 최소한 다른 학생을 보내도록 해.”

 그러자 론다 선생님이 강우빈의 양 어깨를 붙잡고 흔들며 그를 야단치기 시작했다. 그가 받은 질타는 좁게는 세 종류였고 넓게는 한 종류였다. 자신은 선도부장 강우빈에게 일을 지시했다는 것, 제 일을 남에게 미루는 건 책임감 결여의 표상이라는 것, 여러 번 들어갔다 나온 강우빈조차도 새로운 각오가 필요한, 생사가 달린 일을 쉽게 타인에게 떠넘기지 말라는 것이 그것들이었다.

 “떠넘기지 말란 말입니까? 그러는 선생님은요?”

 강우빈은 어깨의 고통과 강제로 강요되는 희생에 대한 분노로 얼굴이 빨갛다 못해 하얗게 질리고 있었다. 나는 강우빈이 걱정됐지만 괜히 불똥이 튈까 두려워 그저 숨죽여 보고 있었다. 강우빈이 도움을 바라는 눈으로 아까 불렀던 학생을 응시했다. 학생은 어색하고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자리를 피했다. 그러자 그는 나를 응시했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도망가지 않은 것만으로도 많은 용기를 쥐어짜낸 것이었다.
 곧장 그의 얼굴을 볼 수 없었던 탓에 이를 가는 소리가 들렸지만 누구의 것인지 정확히 알지는 못했다. 강우빈의 것이라고 추측할 뿐이었다.

 “놔 주세요. 아픕니다.”

 강우빈의 목소리는 속에서 끓어오르는 듯했다. 하지만 론다 선생님에게 겁을 줄 만한 음성은 아니었기에 그녀는 어른을 대하는 태도가 상당히 버릇없다고 지적하기만 했다. 강우빈이 입을 열었다. 그는 조용히, 침착하게 말했다.

 “저는 좋은 일꾼입니다. 그 일꾼이 지금 다쳤고요. 만약 탈골이라면 이렇게 붙잡고 있는 게 전혀 구조 작업에 도움이 되지 않겠죠. 근육이 늘어난 것뿐이라 해도 한동안 불편함을 호소할 거고 짐이 되겠군요. 어느 쪽이든 선생님께 좋은 건 하나도 없습니다.”

 한 자, 한 자. 그의 말에는 힘이 있었다. 하지만 그가 특별히 화났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평소 그가 화내는 방식은 무식하게 소리 지르고 경고하는 게 전부였으니까. 론다 선생님도 나와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어쨌든 강우빈의 주장은 설득력 있었고 그래서 이후 잠깐동안 그의 의도대로 흘러갔다. 론다 선생님은 그에게서 손을 떼고 떨어졌다. 그녀가 혀를 찼는데, 나는 론다 선생님이 혀를 차는 것을 이때 처음 보았다. 강우빈은 아프다고 했던 게 거짓말이 아닌 모양이었다. 그는 계속 어깨를 가만히 두지 못했다. 그렇다고 해서 만지면 덜 아픈 것도 아닌 것 같았다.
 론다 선생님은 몸을 돌려 천막 근처로 갔다. 강우빈은 배웅을 위해 서 있었다. 나도 그랬지만 강우빈도 그녀가 그에게 일을 시키기를 단념했으리라고 생각하는 눈치였다. 그녀는 천막 자락을 걷어 젖히며 그에게 괜찮아지면 다시 말하라고 했다. 강우빈은 잠시 멍한 얼굴로 그녀를 보다가 기어코 얼굴을 붉혔다.

 “괜찮아지면 다시 일하라고요?”

 방금 전의 침착한 어조와는 다르게, 강우빈의 말투는 거칠었다. 그러나 론다 선생님은 동요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강우빈이 순간 의자 옆에 놓여 있던 간의 탁자를 내리쳤다. 쿵 소리가 나서 나는 아주 살짝 눈을 감았다가 떴다. 이를 악문 강우빈의 불규칙적이고 고르지 못한 호흡 소리가 여기까지 들렸다. 어깨의 아픔은 분노로 잊은 듯했다.

 “안 갑니다. 안 가요.”

 론다 선생님은 직위에는 책임이 따른다고, 너는 선도부장의 의무를 다해야 하며 지금이 학교의 기강과 풍기가 가장 바로 서지 못한 때라고 얘기했다. 너는 반드시 가서 모범을 보여야 한다고도 했다. 나는 그 이야기에 공감할 수 없었다. 당연하게도 그것은 강우빈도 마찬가지였다. 급기야 그는 소리쳤다.

 “제가 왜, 왜 저만 가야 하는데요! 왜 구급차를 부르지 않습니까! 하다못해 어른들이 투입되지 않습니까! 이 모범은 대체 누구를 위한 모범입니까! 안 갈 거예요. 가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도무지 어떤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고, 또 선생님께서 기대하시는 ‘모범’이 어떤 건지도 이제 모르겠습니다. 모범은 타인의 본이 될 수 있는 우수한 모습이 아니던가요? 제가 제 목숨을 하찮은 돌마냥 내다 버리고 사지에 스스로 들어가 한 편의 자살 탈출 영화를 찍으며 학생을 구해오면 그걸 빌미로 다른 학생을 꼬드겨 같이 손 잡고 죽으러 다시 들어가는 게, 그게 타인의 본이 될 수 있는 우수한 행동인가요? 선생님들은 절 격려해 주셨고 전 제가 실질적이면서도 중요한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기뻤습니다. 그래서 굳이 반발하지 않았습니다. 건물에 들어가 좀비의 오감을 피해 청소 도구함에 숨고 쓰레기통을 집어 던져 도망다니며 사람을 찾았습니다. 그 공포를 아세요? 모르시겠죠. 겪어 본 적도 없을 테니까! 처음, 처음은! 처음 한 번은 내가 게임 속에 나오는 히어로 같았고 그래서 책임을 다해 무사히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때 사람들이 날 어떻게 봤는지 아십니까? 당신이 날 어떻게 봤는지 기억이나 해?”

 강우빈은 마치 100M를 전속력으로 달린 것처럼 숨을 헐떡였다. 그렇게 많은 말을 늘어 놓았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그는 전혀 진정된 상태가 아니었지만 계속 말을 이었다.

 “내가 죽어서 시체로 올 줄 알고 있었겠지. 나도 영 머리가 나쁘지 않습니다, 아시다시피. 내가 들어갈 때마다 당신의 입은 내게 ‘조심하고 꼭 살아서 돌아와라.’라고 했지만 당신의 눈은 내가 살아 나올 때마다 점차 불안함으로 변모했어요. 실은 내가 죽기를 바랐잖아요. 세상 모든 일이 다 선생님 뜻대로 되지는 않아 아쉽군요.”

 그의 빈정거림은 론다 선생님의 심기를 건드린 것이 틀림없었다. 나는 강우빈의 말이 필시 사실이 아닐 거라고 생각했으나,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녀에게서 조금 떨어졌다. 그녀는 강우빈을 성가시다는 듯 노려봤다. 한동안 둘의 눈싸움이 허공에서 난리였다. 이윽고 선생님이 언성을 높여 강우빈의 버릇없는 면을 힐난했다. 확실히 그는 현재 비정상적으로 감정적이었고 삐딱했다. 그럼에도 그를 아예 이해할 수 없는 건 아니었다. 6번이나 죽음의 공포와 맞서 싸워야 한다고 누가 내게 강요하면 나는 아마 미쳐 버릴 것이다.

 갑자기 바깥에서 큰 소리가 난 것은 그때였다. 우리 모두 놀라서 행동을 멈췄다. 1분 뒤, 학생 한 명이 들것에 실려 천막으로 이송됐다. 선도부원인 것 같았다. 어쩌면 방금 났던 큰 소리의 원흉일지도 몰랐다.
 강우빈은 입술을 앙다물고 들것에 다가갔다. 그는 자신이 주저앉지 않도록 스스로를 다잡고 있는 듯했다. 강우빈다운 강함이었다. 학생은 그를 알아보고 피가 흐르는 오른팔을 들었다. 막 들어온 보건 선생님이 팔에 유리 조각이 많이 박혀 다 빼내기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강우빈은 학생의 손을 잡고 그를 바라봤다. 학생의 왼팔은 아예 움직이지도 않았다. 그는 강우빈에게 자신이 생존자를 찾았노라고 말했다.

 “잘했다.”

 강우빈의 답변은 짧았다. 학생은 힘겹게 심호흡을 하고 다시 말했다. 그에 의하면 그곳은 본관 3층 여자 화장실이었고, 1학년 남학생 한 명, 2학년 여학생 두 명, 그리고 신단아 선생님이 대피한 곳이었다. 학생은 그들을 구하기 위해 가던 중 좀비에게 발각됐고 탈출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창문을 깨고 낙하할 수밖에 없었다고도 했다. 그 이야기를 듣던 론다 선생님은 그의 말이 굉장히 반가운 눈치로, 곧바로 강우빈에게 그 사람들만이라도 구해오라고 지시했다. 강우빈은 미간을 좁히며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말했다.

 “다른 사람을,”

 그러나 그는 말을 다 잇지 못했다. 간절하게 그를 붙잡고 울부짖는 학생 때문이었다. 2학년 여학생 중 한 명이 자신의 누나라고 그는 밝혔다. 강우빈은 놀라 눈을 크게 떴다. 학생이 절규했다. 강우빈은 상황 파악도 힘들어 했다. 학생은 자신의 가족을 부장인 강우빈이 맡아 구해 줘야 한다고, 다른 사람은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 보건 선생님은 학생의 판단이 제법 합리적인 것 같다는 의사를 보였고, 론다 선생님은 강우빈에게 다녀오라고 다시 한 번 그를 독려했다. 모두 동시에 강우빈의 감정에게 호소했다.
 「인간이라면 동고동락한 부원의 가족이 현재 처한 상황을 모른 척할 리가 없다.」
 「한 번 걸었던 목숨, 두 번이라고 못 걸겠는가.」
 「애초에 부장이 잘 지도했다면 다들 빠져나올 수 있었겠지.」
 제3자인 내가 듣기에도 황당하고 터무니 없는 핑계라는 걸 인정하지 않고는 못 배겼다. 강우빈은 입을 벌렸다가 닫기를 반복했다. 하고 싶은 말이 산더미처럼 있는데 그걸 표현할 수 없는 경우, 인간은 그런 행동을 취하기 마련이었다. 그는 얼마간 생각을 정리하며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드문드문 몸을 미약하게 떨기도 했다.
 머지 않아 강우빈은 고개를 들고 한 마디 했다.

 “대체 나한테 왜 이래?”

 그의 눈에서 눈물이 방울져 떨어졌다. 나도, 학생도, 보건 선생님도, 론다 선생님도. 다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의 눈물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그는 눈물을 닦을 생각은 하지 않고, 그저 제 완장을 뜯었다. 그것도 또한 우리에게 있어 충격이었다. 강우빈이 완장을 집어 던졌다. 완장을 집어 던진 것이다. 그가 천막 입구까지 걸어갈 동안 그 누구도 쉽사리 발길을 떼지 않았다. 강우빈은 천을 걷어 젖히다 말고 소리를 냈다. 쥐어짜낸 소리였다.

 “전 인간 안 하렵니다.”

 그게 그의 마지막 말이었다. 우리 중 아무도 감히 그를 따라 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렇게 우리는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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