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第五人格 ❄

우산의 영혼 ─ 那天

by cllun 2019. 12. 16.

 흰 천에 먹으로 쓰인 자백서는 단정히 끈으로 묶여 있었다. 관원은 끈을 풀고 둘둘 말린 천을 풀어 폈다. 아역이 썼다고 보기에는 부족한 데 없는 깔끔한 글자가 검은색으로 수놓여 있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 자백》

 「명은 사필안입니다. 관사에서 아역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사건 진술 및 자백에 앞서 저희 때문에 이런 불미스러운 일에 엮이게 되신 점,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 또한 이 서간을 빌어 모든 진상을 거짓 없이 상세히 고할 것을 약조드립니다.

 

 그 날은 일이 빨리 끝나서 범 형님과 함께 술집으로 향했습니다. 막 해가 지고 있었기 때문에 시간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정유(오후 6시)였어요. 가게의 이름은 백화당(百花堂)이었고요.

 

 가게에 들어선 저희는 구석 자리에 대충 앉았습니다. 아마… 문에서 오른쪽으로 들어가면 보이는 가장 벽에 붙어 있는 자리였을 겁니다. 중앙에는 부티나는 옷을 차려 입으신 분들이 많았고 한창 술 잔치를 벌이고 있기에 최대한 그들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그곳에 앉았습니다.

 

 저희는 막 일을 하고 온 참이라 허기가 졌기 때문에 우선 식사를 시켰습니다. 간단한 주먹밥으로요. 일한 이후 삯으로 받은 주먹밥이었으므로 가게의 식사 목록에 포함되어 있지 않으며, 당연히 가격도 알지 못합니다. 본래 예의대로는 가게에서 술도 밥도 아니 시키고 음식을 가져와 먹는 행위는 적절치 못하나 가게의 여주인과 연줄이 닿아 있어 다행히 눈치 받지 않고 먹을 수 있었습니다.

 

 밥을 조금 먹은 이후에는 술을 주문했습니다. 술집에 온 본의를 지키기 위해서요. 형님께서는 노주(老酒)를 시키셨고 저는 소흥주(紹興酒)를 시켰습니다. 값은 외상으로 아무 쌀이나 서 말을 지불할 예정이었습니다. 술이 들어가자 흥겨워졌는지, 형님과 저는 서로 대화에 몰두하였습니다. 그 날의 업무가 많지 않아 힘이 덜 들었다든지, 어느 부분에서 요령을 피우는 저 자신을 형님께서 보시었다든지, 요령을 피우는 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든지, 날이 좋고 일이 없으니 술이 잘 들어간다든지 하는 대화였습니다. 별건 없으니 잘 기억나지도 않는군요. 천의 지분만 할애하게 될 것을 알기에 이만 줄이겠습니다.

 

 한창 중앙에서도 흥에 겨운 노랫가락이 연신 이어졌습니다. 어느 공자를 중심으로 모인 모임 같다는 생각만 했을 뿐, 처음에는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곧 고녀(雇女)를 불러 무언가를 더 주문하였습니다. 시끌벅적한 와중에 들린 것을 생각해 보면 수주(水酒) 두 병인 듯합니다. 고녀는 금방 술을 준비하여 가져갔고, 그것을 제가 보고 있으니 형님께서도 함께 보셨습니다. 형님께서 말씀하시길, 저 자들은 저리 좋은 술을 물처럼 마시니 퍽 부럽다 할 만도 하구나, 하셨습니다. 저는 간단히 대꾸하길, 술을 물처럼 마시니 어찌 아니 성질 상하오리이까, 하였습니다. 그에 형님께서 말씀하시길, 저 치들이 듣겠다. 조용히 하거라, 하셨습니다.

 

 바로 그때, 가운데 앉아 있던 공자 하나가 고녀의 손목을 잡아 자신의 가슴팍으로 잡아당기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고녀는 너무도 놀라 허옇게 질린 안색으로 왜 이러시느냐, 장난은 치지 마시라 소리쳤습니다. 그러자 공자 웃으며 말씀하시기를, 너 같은 계집이 있기에 술집에 오는 낙이 있으니 빼지 말고 안겨라, 하셨습니다. 고녀의 낯색이 마치 희멀건 죽과 같더군요. 저와 형님은 그 고녀의 나이 방년 십사 세에 어떠한 사내 경험도 없는 것으로 여주인에게 미리 들어 알고 있었습니다. 고녀 역시 그 점을 들어 공자의 손길을 거부하려 노력하였습니다…만, 공자는 오히려 그 점을 마음에 들어하는 기색이었습니다. 공자 말씀하시길, 네 앞뒤 순결 깨끗하기 그지없는 처녀라니 아주 좋도다. 몹시 천한 출신이 염려되나 별실 정도로는 들여 주마, 하셨습니다. 그는 해 덜 가라앉은 시각부터 아녀자를 희롱하는 것임이 틀림없었습니다. 그 광경을 보자 저도 모르게 손에 힘이 들어갔습니다. 형님께서 저를 붙잡으며 말리시며 말씀하시기를, 대화로 풀자꾸나. 아우야, 하셨습니다. 하지만 제 몸은 이미 그쪽을 향해 걸어가 공자를 치고 있었습니다. 공자의 얼굴이 거세게 돌아갔지만 그럼에도 그는 고녀를 아니 놓고 계셨습니다. 그렇기에 몇 대 더 쳤습니다.

 

 진실로 그분께서 대원의 외아들이신 줄 몰랐습니다. 단지 우둔한 제 치기 어린 행동이었을 뿐이며 이는 아무와도 관련이 없는 일입니다. 특히 제 형님께서는 저를 말리려 하시었지 아무런 연관이 없습니다. 어떤 처벌도 달게 받을 터이니 관사에선 부디 현명한 판결 내려 주시옵소서.」

 

 

 

 관원은 천을 내려놓았다. 시각부터 점포명, 외상가까지 정확한 것으로 보아 온전한 사실만을 담은 듯했다. 그는 잠시 다음 글은 그냥 넘길까 고민하다가 흰 천 두루마리 옆에 놓여 있던 파교지(灞橋紙)를 들었다. 좋지 않은 종이 상태에 관원의 미간이 좁아졌다. 엉성하게 접힌 자백서를 펴 보자 투박한 먹 글씨가 보였다. 누가 봐도, 적어도 귀족이 쓴 글씨는 아니리라.

 

 내용은 다음과 같다.

 

 

《두 번째 자백》

 「관사의 아역, 범무구입니다. 사설은 집어치우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는 게 관원께서 보기도 좋겠지요. 먼저, 이 서신에 적힌 내용은 모두 진상이며 사실입니다.

 

 그 날 그 자를 친 것은 접니다. 하지만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그 자는 지위에 걸맞은 모범을 아니 보였고 여인을 희롱, 농락했습니다. 그 여인의 나이 고작 이칠에 불과하였고 그런 농조차 자주 들어 보지 못한 순수한 처자였습니다. 그런 여인의 손목을 억지로 붙잡고 그 더러운 가슴에 끌어당긴 그 자의 행태 우선적으로 잘못되었고, 잘못된 행동에는 대가가 따라야 하기에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이들을 대신해 손을 올렸을 뿐입니다. 이건 지엄하신 관사의 뜻을 받들어 정의를 구현하려는 행동이었으며 결코 비난을 받거나 지탄의 대상이 되어야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 아우와 함께 가기는 했으나, 그가 제 의로 맺은 형제가 맞기는 하나, 그는 이번 일에 하등 관련이 없습니다. 그는 한사코 저를 말리며 이러다 화를 입는 것은 저 자신밖에 없다, 옳은 일을 하였다 하여 반드시 칭찬이 돌아오는 것은 아니라고도 말했습니다. 그런 상냥한 아우의 충언에도 저는 어쩔 수 없이 주먹을 휘둘렀습니다. 제가 그 상황에서 달리 어찌하겠습니까? 그의 충언은 그저 저희의 안위를 생각할 뿐인 말이었으며 전혀 의롭지 않았습니다. 불의를 앞두고 그런 말에 현혹되어 아니 나선다면 그건 사내대장부로서 이 세상에 태어난 의를 다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물론 술을 몇 잔 걸치긴 했습니다만, 고작 두어 잔에 불과하였습니다. 평소 술을 아주 못 마시는 편이 아니며 음주 버릇으로 인해 폐를 끼친 적도 없습니다. 주먹밥을 먹은 후 마셨으니 빈 속에 노주를 들이킨 것도 아닙니다. 그러하기에 저는 온전한 정신으로 그 자를 쳤습니다. 앞서 말했다시피 그 자는 인륜의 도리를 저버린 자였습니다. 칠 수밖에 없었지요. 아우와 함께 주문한 술의 양 역시 취할 만큼 충분치 아니하였습니다. 백화당 여주인에게 아무 쌀 서 말분의 술을 달라고 요청하면 금방 알 수 있을 겁니다.

 

 그 날은 여타 관원, 관리들이 일을 많이 줄여 주셨기 때문에 일정이 빨리 끝났습니다. 그때 해가 막 산자락에 걸쳐 있었으니 유시 쯤이었겠군요. 사 아우가 저더러 노을을 좀 보라고 한 덕에 기억이 납니다. 백화당에 들어간 직후까지 저희는 놀과 구름을 보며 도란도란 담소를 나누었습니다.

 

 들어간 이후에도 계속 구석 자리에서 대화하고 푸념하기에 바빠 딱히 주위를 둘러 보지는 않았습니다. 아역의 삶은 고달프기 그지없고 내 앞에 아우가 있다면 그만이니 달리 누구를 더 보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아우의 주의가 중앙으로 집중되기 전까지는 그곳에 그 자가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냥 그쪽이 소란스러운 걸로 보아 누군가 귀 빠진 날 맞이하기라도 하였나 보지, 하고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을밖에요.

 

 소란이 불거지고 아우의 표정이 아니 좋기에 그쪽을 본 것이 처음이었습니다. 그 자의 저급한 행동은 그때 보게 되었고요. 품팔이하러 술집까지 흘러 들어온 아녀의 손목을 붙잡고 이리저리 휘두르고 있는 짐승만도 못한 행동을 보았습니다. 그러니, 이미 진술했지만, 제가 화를 내는 일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장내의 모든 이가 그를 파렴치하다는 눈으로 보면서도 좋은 재질의 비단 사의를 입고 있는 그를 어찌하지 못했습니다. 후환이 두려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모든 이가 그런다 하여 저까지 그렇게 눈을 감고 소시민으로 살라고 배운 적은 절대로 없습니다. 더군다나 그 자를 막는 것은 바른 일이었습니다. 공자가 외고 맹자가 외는 옳은 일이었습니다. 따라서 한치의 망설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아우가 막으며 세상을 좀 똑똑하게 살라고 애원하기까지 해도 제 결심에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그 자의 면상을 쳤습니다. 낯이 시뻘겋게 변해 잡아먹을 듯이 구는 꼴이 우스웠습니다. 그럼에도 정신을 차릴 기미가 아니 보이기에 몇 대 더 팼습니다. 짐승은 맞으면서 크는 거라고 어릴 때부터 배워왔거든요. 설마 그 짐승이 대원의 외자일 줄 알았겠습니까? 뭐, 알았어도 결정에는 변함이 없었을 테지만요.

 

 하여튼 저는 한 점 부끄러움이 없으며 그 일은 제 독단적인 판단으로 인해 일어난 일이니 옳은 판결 부탁드립니다.」

 

 

 

 관원은 종이를 내려놓았다. 시각부터 점포명, 외상가까지 사필안의 자백서와 완전히 같았다. 일이 이렇게 되니 진범이 누구인지 가려낼 수 없었다. 관원은 며칠 전 대원으로부터 온 지령을 기억했다. 열흘 내로 답장을 달라던 밀서 한 통의 내용. 답장의 내용으로 적합한 건 진범의 신상, 그러나 두 용의자는 모두 진범으로 자신을 지목했다. 이들 중에서 어떻게 진범을 잡아야 할까…….

 

 그는 붓을 들었다.

 

 .

 .

 .

 

 「본 관사는 아역 사 씨와 범 씨에게 도주범을 잡을 권한을 위임한다.」

 

 

那天

그 날

'第五人格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캠베라 ─ 罂粟  (0) 2020.05.06
선지자 ─ 犧牲  (0) 2019.12.16
납관사 ─ 殮襲  (0) 2019.12.16
우산의 영혼 ─ 贫相  (1) 2019.1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