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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HS/BL

[현우빈] 너와 나의 관계의 정립에 대하여 下

by cllun 2018. 11. 11.

下 ─ 송현우





 나는 오늘 네게서 절대로 듣고 싶지 않았던 한 마디를 듣고 말았다. <헤어지자.>라고. 그렇게 말하는 네 모습이 너무도 덤덤해서 나는 그만 그게 장난인 줄로 알았다. 네가 내게 장난을 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음에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생각하고 싶었다.

 사실 내 입으로 말하긴 조금 그렇지만, 나는 조금 모자란 구석이 있다. 머리가 안 좋다거나 그런 것과는 다르게… 눈치가 없다고 표현들 하더라. 어쨌든 나는 그렇기 때문에 네게 가볍게 물었다. <아, 왜 그래. 내가 뭐 삐치게 한 게 있어? 또 수업 째서 그래? 아이, 말해 봐. 고칠게~.> 너에게서 ‘내가 수업 째지 말라고 그랬지! 꼭 이렇게 말을 해야 알아들어, 이 새끼는.’ 같은 약간은 거칠지만 애정이 담긴 질타를 바라고 한 말이었다. 하지만 너는 감정이 통째로 사라진 것처럼 물기 없이 반복했다. <헤어지자고.> <왜? 내가 정말 잘못했어? 왜 그래.> 곧바로 되물었지만 넌 이번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번에도 너는 내게서 등을 돌렸다. 그날처럼 오늘도 네 대답은 끝끝내 들을 수 없었다.



 처음에는 그래, 네가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어.

 자꾸 묻는 말에 대답하지 않고 숨어 버리는데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채냐는 거지. 그건 불공평한 처사가 아닐까? 나는 네가 아니고 그건 너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너는 나와 다르게 이런 데에 도가 튼 녀석이니까. 그렇기에 더욱 내게 아무것도, 네 고민과 네 소망을 아무것도 풀어놓지 않는다는 부분에서 나 또한 화가 났었다.
 네가 그날 나보고 네가 내 애인인데 왜 네 말을 듣지 않느냐고 말을 했었는데 난 거기에 답변할 시간조차 가질 수 없었다. 애인이라면 내 말도 듣고 이해해 줬으면 하는데. 그 전에 내가 네 말을 듣지 않을 리가 없잖아. 오히려 네가 내게 솔직하지 못한 탓에 이리 꼬이고 꼬인 거 아니냐고. 그렇게 나는 말하고 싶었다.

 물론 네가 옥상을 빠져나간 이후에 그런 생각이 들었단 것이다. 네 앞에서 막상 네 눈을 마주하며 그런 모진 말을 할 자신이 내게는 없다. 내가 네게 사랑을 주며 지친 시간동안 너도 내게 사랑을 주며 지쳤겠지. 서로 그렇게 지쳐 지금은 우리에게 있어 가장 힘들 시기겠지.



 그리고 두 번째 든 생각은 ‘네가 나한테 먼저 말을 안 한 적이 있었던가.’였다.

 가만히 돌이켜 보면 너는 꽤 많은 시간을 공 들여 내게 전달했던 것 같기도 하다. 자잘하게는 술 먹지 마라 네 몸 상한다, 수업 시간에는 수업을 들어라 대학은 가야지, 부터 크게는 여학생들이 널 문제로 건의를 넣는다 네가 물론 그랬을 리는 없지만 주의해서 나쁠 건 없다, 뭐 그런 문제까지. 네가 어떤 ‘자리’에 가 있기 때문에 내가 상대적으로 우대 받았던 일도 많았다. 그럴 때마다 기분 참 좋았지.

 그런 적이 있었다. 내가 엿들었던, 떳떳하게 얻은 기억은 아니긴 하지만 내가 정말 마음 깊이 감동을 받은, 너에게 다시금 빠지게 된 계기가 된 적이 있었다. 너는 모두가 알아주는 선도부장이잖아. 그런 사람에게, 그런 사람씩이나 되는 사람에게 나같은 사람이 붙어 있다는 게 치부가 될 수 있다는 걸 나는 그때까지는 전혀 생각지 못했어. <강우빈, 너 왜 송현우에게만 유독 무른 거야? 대할 거면 똑같이 대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한 명이 그렇게 말했을 때 나는 길을 지나던 중이었다. 네 얼굴이 보여 반사적으로 숨은 것뿐인데 언뜻 본 네 옆모습이 곤란함을 내포하고 있었다. 그야 곤란했겠지, 나는 네 애인이니까 말이다. 명백히 빈정거림을 담은 그 말에 너는 어색하게 고개를 까딱였다. <솔직히 송현우, 걔가 나쁜 애는 아닌데 너무 자유분방하잖아. 교칙에 안 맞는 게 한두 개가 아니라니까?> 부추길수록 나는 네가 너 자신을 변호하기를 바랐다. 그랬는데. 너는 단호하게 말했다.
 <우린 이 좀비고에 입학한 똑똑한 사람들이야, 그래?>
 <그…렇지?>
 <그럼 충분히 말로 타이를 수 있는 건 타이를 수 있겠군. 그렇지 않나?>
 <뭐어.>
 <송현우가 정말 질이 나쁜 녀석이라면 나도 상종하지 않는다. 다만 말로 해서 알아들을 수 있는 녀석이라면 억지로 포용해주지 않을 이유가 없지.>
 <너도 참 한결같이 말 어렵게 꼬아서 한다.>

 그래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사랑을 모두 너에게 바치기로 또 한 번 마음먹었다. 이렇게까지 날 위해주고 변호해주는 너 아니면 날 데려갈 사람이 누가 있겠어.



 그래서 나는 다시 이 문제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네가 나한테 어떤 마음으로 헤어지자고 말했는가.’ 왜냐하면, 나는 너와 정말 진심으로 헤어지고 싶지 않았으니까. 널 어떻게든 붙잡고 싶은데 방법이 도무지 생각나지 않아서.

 내가 생각하기에, 조금 주제 넘는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너는 날 네 생각보다 훨씬 좋아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그’ 강우빈이 밤중에 학교에 남아 있다고 징계를 먹이지 않을 리가 없고, 거기다 술까지 먹고 있는데 처벌을 주지 않고 말로만 때운다는 건 정말 큰 호감의 표시인 걸 알고 있다. 게다가 나는 네게 간혹(정말 간혹이지만) 즐거움도 준다고 생각해. 네가 웃는 모습을 보면 좋은 건 나니까, 그리고 그 하찮은 언동에 네가 웃어주니까 나는 그것으로 우리 관계가 좋다고 만족하고 있었다. 너는 좀체 잘 웃지도 않고 말 한 마디도 가볍게 하는 법이 없으니 내가 네 몫까지 자유롭게 행동해 그런 나를 보면서 너도 자유를 느끼길 바랐다.



 내가 간과한 것은 어쩌면 너와 나의 무게 차이가 아닐까 싶다. 내가 사랑한 너의 진중함을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너도 나의 가벼움을 이해할 수 없을 거야.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한다. 하지만 나는 네 생각보다 훨씬 가벼워서 이해할 수 없다는 이유가 우리의 사랑에 있어 장벽이 되어야 하는지를 모르겠다. 그도 그럴 것이, 시작부터 이미 장벽투성이였고 많은 것을 서로 극복해 왔잖아, 우리는.

 너는 남자끼리 사귄다는 것이 세간에서 이상하게 여겨지기 때문에 그것을 장벽으로 여겼다. 그래서 나는 입을 다물었다.
 너는 타의 모범이 되어야 할 네가 나와 사귄다는 것이 밝혀지면 자신의 위상이 죽을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장벽으로 여겼다. 그래서 나는 널 만지지 않았다.
 너는 자신과 나는 너무도 다르기 때문에 금방 서로에게 질리게 될 것이라고 여겨 그것을 장벽으로 여겼다. 그래서 나는 너를 조금이나마 흉내 내 보기도 했다.

 그렇게 서로 맞춰 걸으며 이룩한 것이 너와 나의 관계였다. 더 나아가 내가 그렇게까지 함으로써 지켜낸 것은 비단 우리가 사귄다는 사실이 아닌 내가 너를 좋아하는 내 마음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우리가 아니게 되었다. 나의 마음이 전부 부정된 채로, 또 너의 마음도 그렇겠지.
 나는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며칠간 넌 내 시야에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작정하고 나를 안 보기로 결정이라도 했는지 너는. 하긴 네가 어떤 사람인데, 마음만 먹으면 우리는 절대로 만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분명 너와 나는 같은 반에 속했을 텐데 대화 한 마디도 할 수 없다거나.

 너에게도 생각할 시간이 필요할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이미 오래 전에 모든 생각을 마무리한 참이지만, 넌 나와는 다르게 쓸데없이 생각이 많은 경향이 있으니까. 이번에도 나는 기다릴 수 있었다. 기다림의 보상이 우리의 재결합이라면 그보다 더 좋을 수는 없겠네. 너도 그렇게 생각할까.



 일주일이 지났다. <너 요즘 강우빈이랑 안 붙어 다니네.> 그런 이야기를 들어서 조금 우울했다. 나라고 안 붙어 다니고 싶겠는가. 평소처럼 보이도록 대처는 잘 한 것 같은데, 요즘 들어 너를 볼 수 없는 탓에 나는 반에 더 오래 붙어 있게 되었다. 네가 보이는 곳에서 조금이라도 너와 가까이 앉아 있기 위해.

 일부러 네게 몸을 부딪쳐 강제 대화 타이밍도 만들어 봤다. 너는 별다른 말이 없었다. <잘 보고 다녀.> 그게 끝이라 싱거웠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것은 사랑스러운 너의 한 마디이기에 나는 기억 속에 고이 간직하기로 했다.



 그리고 지금은 우리가 헤어졌던, 7일 전의 그 교실에 앉아 서로를 보고 있었다. …그러니까 내 말은, 나는 네 얼굴을 바라봤고 너는 서류 속의 내 이름 석 자를 보고 있었다. 헤어진 그때 네가 이런 기분이었을지 모르겠다. 눈앞에 있는데 손만 뻗어도 닿을 것 같은데 겁이 나 닿을 수 없는 그 기분. 그랬다면 나는 천하의 나쁜 자식이야.

 먼저 운을 뗀 건 이번에도 너였다. 나는 이런 곳에서까지 입을 놀릴 정도의 용기가 없었다.


 “그간 좀 조용히 사나 싶더니.”

 “─아니, 뭐. 그냥….”

 “수업도 잘 듣고, 큰 말썽도 없고. 이 정도면 그냥 내가 보기 싫었던 거 아닌가?”

 “그럴 리가 없잖아. 그렇게 말하지 마.”


 또 사소한 말다툼이었다. 왜 우리는 늘 대화의 주제가 다툼이어야 하는 건지 나는 모르겠고 알고 싶지도 않다.

 네가 한심하게 나를 바라봤다. 그래, 그렇게 보겠지. 네가 날 이제 정말 싫어하게 되어 버렸나 보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던데 그동안 널 보던 건 나뿐이었나 봐.
 나는 아직도 널 좋아하는데.


 “됐고, 교내 청소 일주일. 반성문 다 쓰면 선도부실에 올려놓고 가라.”


 이번에도 너는 나를 피할 것이다. 피할 기미가 보였다. 안 되지, 제발. 간곡하게 너를 생각하며 나는 네 팔을 붙잡았다.


 “잘못했어. …나 지금 정말… 추하게 보이는 거 아는데 내가 다 잘못했어.”

 “아니, 하……. 놔. 반성문은 부실에 놓고 가라고 했다.”

 “미안해, 우빈아. 응? 한 번만 다시 생각해 주면 안 될까? 그동안 차분하게 생각 많이 해 봤어. 내가 물론 다 잘못한 게 아니고 서로 대화가 없어서 오해가 쌓인 것도 있을 거고, 아니, 이게 아니라 아무튼 우빈아. 우리 대화 좀 하자. 해 줘. 제발.”

 “송현우, 일단 좀.”

 “안 놓을 거야. 안 놓을래. 대답해, 빨리. 맨날 이러고 대답 없이 도망가지 말고. 네 대답을 들어 본 일이 없어, 알아?”


 네 입은 막으면 막을수록, 그 시기가 빠를수록 좋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말을 할 때마다 도리어 네가 더 상처를 받는 표정인데 내가 그 꼴을 어떻게 보냐, 내가. 차라리 넌 말을 하지 말아라. 내가 네 몫만큼의 말을 다 해 줄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할 것이다.

 불현 듯 네가 눈을 크게 떴다.


 “야, 울지 마.”

 “뭐래~! 나 안 울어.”


 네가 반사적으로 내게 손을 뻗었다가 거둬들이는 것을 보았다. 희망을 걸어 도박을 해 볼까. 네 손을 잡아 내 뺨에 가져다 댔다. 손을 빼면 꽝이고 가만히 있으면 실낱같은 그것에 내 모든 것을 걸어 볼 만하다.


 “진짜 넌 한 번도 내 말을 듣는 적이 없어. 단 한 번도. 더럽게 말 안 들어.”

 “비글미 있잖아. 그런 나를 좋아했으면서.”

 “아니. 듣지 않으면서도 들으려고 노력하는 송현우가 좋았지.”

 “그것도 나네. 역시 우빈이, 날 잘 알아.”

 “좀, 울지 마. 그만 울어.”

 “내가 너 대신 울어 주는 거야. 이건 몰랐구나?”

 “아니…. ……아…, 진짜, 너는, 너란 놈은 정말….”

 “울지 마, 우빈아. 네가 울면 너 대신 내가 우는 보람이 없는걸.”

 “다물어.”


 그렇게 한동안 네 손은 내 뺨에 자리한 채 얌전히, 얌전히 그저 존재했다.
 나는 그 손길에 네가 나로 인해 겪었을 상처를 사죄했는데, 너는 내 눈물로 그 상처를 모두 씻어낼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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