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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HS/BL

동석연빈 ─ 미열, 인육

by cllun 2019. 12. 27.

+) 2017/11/06 작성

 

 

 

 처음 들었던 생각은 ‘내가 정말로 좀비가 되었어?’나 ‘실험이 성공했나?’같은 게 아니었다. 그것보다는 훨씬 단순하고 본질적이고 원시적인 감상.

 ‘아프다.’

 그 이후로는 주기적인 고통이 뒤따랐다. 감기 전조 증상처럼 나타나는 미열 증상에 어떠한 욕구. 인육을 먹고자 하는 욕구. 어디서 그런 것들이 오는지 그 출처는 확실하게 증명된 바가 없다. 혼자 막연히 좀비화가 된 여파로 몸이 버티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는 것뿐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증상들은 내게 아무런 악영향도 끼치지 않았었다. 미열은 해열제를 먹고 하룻밤만 자면 밤새 나을 만한 수준의 것이었다. 이때까지 큰 열로 번지거나 열에 의해 머리가 어떻게 된 적은 없었다. 인육, 그건 더 해결하기 쉬운 문제가 아닌가. 욕구가 생기는 건 미열이 있은 후 하룻밤 동안의 이야기다. 그리고 밤은 인간이라면 수면을 취해야 하는 시간이지. 내가 타인과 접촉할 수 있는 시간이 아니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아무런 악영향도 끼치지 않았‘었’다는 것이다. 나는 당시 어렸고 일로 바빴고 또 너를 만나지 못했다. 지금은 눈앞에 네가, 네가 있었다. 조연빈. 넌 나를 만나지 말았어야지. 이런 괴물 같은 나를 만나지 말았어야지. 병문안을 오지 말았어야지. 아픈 나를 걱정하지 말았어야지.



 네가 말했다.

 “뭐야. 기껏 걱정해 줬더니 열이 37도밖에 안 돼? 난 또 잘~난 서민이 아프대서 엄청 심한 병이라도 앓는 줄 알았네.”

 그 37도가 얼마나 위험한지 너는 알고 있을까. 음습하고 질척거리는 감정이 덩어리진 채 내 안에서 꿈틀거렸다. 너를 한 번만 먹어 보고 싶다. 네 연한 목덜미를 물고, 네 얇은 손가락을 씹고, 네 하얀 상체를 핥고…. 어쩌지 못할 욕망이 북받쳐올라 전신을 괴롭혔다. 머리가 아프다. 뇌의 깊은 곳에서부터 징징 울리는, 너를 붙잡아 안고 크게 베어물라는 목소리가 따갑게 꽂힌다.

 “이번에는 얼마나 지났더라…. 세 달? 너도 참 징하다. 매번 이러니 불가촉천민이라는 단어가 생기는 거 아니냐고─.”

 고개를 돌렸다. 네 얼굴을 보고 있으면 나는 분명 자제하지 못할 것이고 내 예상은 아마도 정확하다. 너는 아무것도 모른 채 내 앞에서 무어라고 떠들고 있었고 비록 내 귀만큼은 그 내용을 온전히 담아 보관했지만, 그래서 더욱 나는 열이 올랐다. 이건 좀비화의 부작용일까, 너를 원하는 내 진심일까. 이 혼합된 감정을 증명할 수 있는 학자는 없다.

 “돌아가.”
 “참나, 이럴 줄 알았어! 이래서 올 필요도 없다고 한 건데! 죽 놓고 갈 테니까 콱 죽든지 살든지 알아서 해!”

 문이 닫히고 네 향기가 남아 확산되었다. 네가 배 위에 올려둔 죽의 온기가 따뜻했다. 더워. 하지만 난 이 상태를 한 시간 정도 지속할 생각이다. 움직이면 네가 여기 왔다는 흔적이 사라지지 않겠는가.



 나는 왜 이리도 비겁한 놈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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